장소 :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안 동대문지하상가 입구
일시 : 매주 금요일 자정(12시)

Q1. 노숙인이란?

과거에는 노숙자라는 말을 쓰지 않았고 ‘거지’, ‘부랑인’이라고 불리어졌다. 그러나 I.M.F. 이후에 수많은 실직자들이 길거리로 몰려서 국가가 ‘노숙인’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노숙자(露宿者) 또는 노숙인은 주로 경제적 빈곤으로 인하여 정해진 주거 없이 공원, 길거리, 지하철역, 대합실 등을 거처로 삼는, 도시에서 생활환경이 가정 어려운 빈민층을 말한다. 거주지가 없기 때문에 영어로 홈리스(the homeless)라고도 한다.

Q2. 노숙인의 유형?

⓵ I.M.F. 이전 노숙인 : 이들은 보통 가난을 되물림한 거지 또는 부랑인이었다. 이들의 존재는 과거에도 많이 있었으나 사회의 무관심 속에 있었다. 그러나 I.M.F.를 통하여 이들 역시 노숙인으로 분류되어 사회적 관심 속으로 들어왔다.

⓶ I.M.F. 이후 노숙인 : 이들은 I.M.F.를 통해서 실직 또는 부도를 경험한 유형이다. 이들이 거리로 몰리며 노숙인이 되고 사회적인 큰 관심거리로 대두됐다.

Q3. 노숙인이 되는 원인과 과정?

한마디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보통은 한 개인이 노숙자가 되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질병 및 사고 등에 따른 노동력의 손상, 둘째, 가출이나 이혼 같은 가정문제, 셋째, 실업과 사업의 실패 등으로 인한 경제적인 문제이다. 이런 원인들로 인해서 사회 경제체제에서 일시적으로 또는 장기적으로 이탈된 경우 노숙자가 된다.

Q4. 노숙인(쪽방주민)에 대한 편견?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일하지 않고 술만 먹는 것 아니냐?’, ‘그러므로 저런 사람들은 도와줄 필요가 없지 않느냐?’, ‘깨진 독에 물붓기 아니냐?’등이 있다.

그러나 노숙자들이 처음부터 술먹고 노숙하면서 포기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살아보려고 비정규직의 직장 생활도 하고, 일용직 노동일도 해 보았지만 건강이 악화되고 실직당하고, 의욕상실로 인하여 자포자기 한 상태가 된다. 특별히 자신을 지지하는 가족이 없으므로 더욱더 기본적인 근로의 의욕이 떨어져서 절망하고 자신을 포기한 상태가 된다. 그러므로 노숙인은 도울 필요가 없는 존재가 아니라 도움이 더욱 필요한 존재이다.

Q5. 왜 노숙인(쪽방주민)은 사회 복귀가 어려운가?

① 신용불량자 ② 각종 질병(만성질환) ③ 학력저하 ④ 사회부적응(규칙적인 생활을 두려워함) ⑤ 사단의 역사(알콜, 음란, 폭력 등으로 마음에 상처가 많아 결국 절망하다가 자살하게 만듦)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쉽게 일반인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변화의 속도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Q6. 어떻게 이들을 회복시킬 수 있는가?

사람의 변화는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아야 변화가 된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대부분 인생 실패자요, 병든 사람이요, 외로운 사람들이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난다. 그러므로 노숙인(쪽방주민)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을 제공해야 한다. 무료급식이나 무료진료 등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저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단순히 사회복지나 구제를 통해서 저들이 조금은 도움을 얻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

Q7. 등대교회의 역할?

등대교회는 노숙인(쪽방주민)에게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하여 모든 행사를 제공하면서 꼭 예배를 드리며 복음을 전한다. 예를 들면 무료급식 전에 예배를 드리거나 무료진료 전에 예배를 드린다. 또한 구정(추석)부흥회 때 꼭 예배를 드리고 난 뒤에 선물을 전달한다.

예배와 구제를 병행하는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거듭나기 때문이다. 또한 거듭난 사람 안에서 성령께서 개입하실 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노숙인(쪽방주민)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

Q8. 노숙인(쪽방주민) 사역 시 마음가짐?

노숙인(쪽방주민)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이는 결코 지속적으로 사역을 할 수도 없고 이들의 변화를 기대할 수도 없다.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윤락여성들과 문둥병자들의 친구가 되셨던 일처럼 주님의 긍휼과 사랑을 가지고 이들에게 다가가고 이들을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